2026년 4월 11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힌드의 목소리', 영화의 힘과 재연의 윤리

작성 2026.04.10 13:14 수정 2026.04.10 17:38 조회 81
힌드의 목소리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가 '세상을 비추는 창'과 같은 기능을 할 때가 있다. 뉴스 보도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때로 알림과 각성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 알려져야만 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도 의미와 가치를 띠게 된다.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과 사이 영화라는 매체와 만나면 그 파급력은 배가된다.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 이스라엘군은 텔알하와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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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긴급 통화 내용은 실제 그날 녹음본이다"

힌드의 목소리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사망한 6살 소녀 힌드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였던 이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와 감독이 추구한 연출 형식 때문이다.

영화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으로 사망한 6살 소녀 힌드의 마지막 시간을 그린다. 힌드는 가족들과 차로 대피하는 도중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고립됐다. 6명의 가족은 사망했고, 살아남은 힌드는 시신에 둘러싸여 휴대전화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구조를 요청한다.

영화가 사건을 재연한 토대는 힌드의 실제 목소리다. 적신월사에 구조 요청 전화로 남겨진 소녀의 음성은 영화의 내러티브가 됐고, 소녀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적신월사 사람들의 모습은 배우가 재연했다. 파일명 'RECORDING_FILE_240129.WAV'으로 기록된 소녀의 음성은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 소리(또는 파동)를 시간에 따라 어떻게 주파수 성분이 변하는지 표현한 그래프)과 어우러져 스크린에 시각화된다.

힌드의 목소리

적신월사의 상담원 오마르와 라나, 팀장 마흐디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업무를 하던 중 소녀 힌드의 구조 전화를 받는다. 힌드가 고립된 지역과 구조대가 있는 곳은 차로 8분 남짓한 가까운 거리다. 그러나 마흐디는 당장 출동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해당 지역은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됐으며, 공격이 진행 중이다. 구급차를 해당 지역에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조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적신월사가 COGAT(이스라엘 국방부 산하부서로 점령지에서의 활동을 조정)에 연락해 중재를 요청하고, 허가가 떨어져야 현장 군들이 보내는 안전경로로 구급차가 이동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힌드를 구조할 수 없을뿐더러 구조대원들이 이동 중 폭격을 당할 수 있다.

"살려주세요", "저는 죽어가요"라고 애원하는 힌드의 전화를 받으며 가슴이 타들어가는 오마르와 라나는 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은 마흐디를 원망한다.

마흐디는 수많은 대원을 전쟁 중에 잃었다. 인도적 구조활동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적신월사가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대원은 마드훈과 자이노 단 두 명뿐이다. 전시 상황에서도 이어지는 관료주의적 절차와 비효율적인 행정은 불합리한 장애물처럼 여겨지지만 이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도 영화는 보여준다.

힌드의 목소리

WAV파일로 전해지는 힌드의 절박한 목소리는 슬픔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느끼는 무력감도 생생하게 전달된다. 경험이 쌓여도 익숙해지지 않은 상실의 고통과 무력감의 늪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분노와 오열뿐이다.

영화를 연출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불과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이 사건을 관객으로 하여금 '목도'하게 한다. 공간을 한정하고 청각을 활용한 효과는 놀랍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은 적신월사 사무실뿐이다. 생과 사의 가느다란 실타래를 붙잡고 있는 힌드의 절박한 목소리,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파괴적인 총성과 폭격음만으로도 전쟁의 공포를 현실화시킨다.

이 '목도'는 그저 눈으로 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직시의 힘은 체화로 이어진다. 관객으로 하여금 귀로 느끼게 하며 가슴으로 울부짖게 한다. 이제는 망자가 된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을 총격이 진행 중인 분쟁 지역 한가운데로 데려가며, 힌드가 느낄 공포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힌드

구조 요청자의 목소리를 사용해 참극을 재연하겠다는 감독의 선택은 '진실의 목도'와 '재연의 윤리'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선 6살 소녀의 절규를 실시간으로 다루며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이 일으킬 각성과 변화의 힘도 무시할 순 없다. 비극을 목도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소신에 따른 감독의 선택과, 재연의 수위를 향한 일부 관객의 불편한 시선은 이 영화가 낳은 불가피한 논쟁이다.

영화는 일부 장면에서 힌드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적신월사 상담원들의 실제 음성도 함께 사용한다. 극 후반부에는 배우들의 재연과 실제 적신월사 직원의 상담 영상(SNS에 올리기 위해 실제 촬영한 영상)을 포개는 연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연과 실제를 혼합한 연출은 이 상황이 영화적 연출이 아닌 명백한 사실이었음을 강조한다.

힌드

이같은 연출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영화는 단순히 보도하지 않고 기억한다. 그날 벌어진 폭력 자체만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은 침묵, 그것은 리포트나 기사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영화만이, 그 정적과 친밀함 속에서, 가까스로 품어볼 수 있다. 망각에 저항하고, 세상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한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가자의 아이들을 지켜야 할 시스템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리고 세계의 침묵이 어떻게 그 폭력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연의 윤리를 두고 나온 평가에 대해서는 "시간이 더 지난 뒤에, 이 영화가 잘못됐다고 느껴진다면 그때 무엇이 문제였는지 말해달라"고 판단 유보를 부탁했다.

영화는 말미 355발의 총알이 박힌 힌드 가족의 차와 처참한 시신, 찌그러진 구급차가 담긴 실제 영상을 보여준다. 하니야 감독이 말한 '기억'은 폭력이 남긴 비극에 국한하지 않는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파도 소리로 채운 것은 바다를 좋아했던 힌드에 대한 애도인 동시에 전쟁으로 소리 없이 사라진 무수한 민간인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외침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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